이 이야기는 크롱봉 지역에서 어머니가 있었지만 "고아"가 된 두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남동생이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동생이 네 살, 형이 여섯 살이었을 때, 어머니는 어려운 생활 때문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연로하신 조부모님께 양육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두 형제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고, 미래는 불확실했습니다.
이미 힘겨운 삶을 살고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안쓰러워하던 부온돈 지역에 사는 친삼촌은 두 형제를 집으로 데려가 키웠습니다. 가족 역시 가난하여 남의 땅에 지은 임시 주택에서 살아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은 두 형제가 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을 키우고 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온마투옷 시에서 열린 행사에서 취재하는 기자들. |
부온마투옷시 호아푸 마을에 사는 B 씨의 노숙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보호소에 입양되었습니다. B 씨는 시력을 잃고 태어났고, 나이도 모르고, 언제 고향 하띤을 떠나 닥락 으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건강했을 때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에 해먹을 흔들어 주곤 했고, 그 대가로 매일 식사를 제공받았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했을 때는 이웃들의 친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쌀과 생선 소스, 때로는 자선 단체에서 받은 음식이나 선물이 부족했습니다.
농담 삼아 "간수 겸 촌장"이라고 불리던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때처럼, 부온호 마을 L 씨의 친절과 관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국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신 후, 쉴 새 없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음식과 옷을 나눠주셨습니다. 심지어 직접 집 청소를 하고, 이불과 옷을 빨고, 마비 환자, 노인, 아이들을 목욕시켜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병 마을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직접 상처를 씻어 주시고, 환자들에게 약을 발라주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감정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삶의 여정을 가진 인물들과의 만남을 기억합니다. 암과 만성 통증을 앓으면서도 학업에서 성공하려고 애쓰는 여학생, 전쟁에서 돌아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온몸에 남은 상처와 자녀와 손주들이 겪고 있는 에이전트 오렌지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돌아오는 부상병들의 모습…
다크락신문 기자 (오른쪽 표지) 가 기사를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을 답사하는 모습입니다. |
제가 만난 인물들의 여행과 인생 이야기는 저에게 단순한 저널리즘 작품이 아니라, 사람과 삶의 진정한 가치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진정성 있고 감동적인 기사가 독자의 마음을 울릴 때, 바로 그때 여행과 만남은 진정으로 깊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독자들은 단순히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 사회의 한 단면을 읽고 있으며, 때로는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공감과 영감을 얻습니다.
진실되고 생생한 기사를 쓰려면 기자는 헌신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자의 여정은 단순히 정보를 찾고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와 공유를 바탕으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출처: https://baodaklak.vn/xa-hoi/202506/nha-bao-nguoi-ke-nhung-cau-chuyen-doi-b3f13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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