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9월 30일, 80일 밤낮의 정치적 투쟁 끝에 우리와 프랑스는 하노이의 군사적 이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고, 10월 2일에는 하노이의 행정적 이전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1954년 10월 8일, 빈까 대대(수도연대, 308사단)는 프랑스군 주둔지를 인수하고 이양하는 임무를 띠고 하노이에 진입한 첫 번째 육군 부대였으며, 1954년 10월 10일 수도를 점령하기 위해 진입하는 군대의 안전을 보장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1954년 10월 9일 오후 4시, 마지막 프랑스군이 롱비엔 다리를 건너 철수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베트남 인민군은 하노이 전체를 장악하여 질서정연하게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1954년 10월 10일 아침, 시 군사위원회와 보병, 포병, 대공포, 기계화부대를 포함한 인민군 부대들이 여러 개의 큰 부대로 나뉘어 하노이로 향하는 역사적인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십만 명의 하노이 시민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깃발, 사진, 꽃을 들고 주요 거리에 모여 승리한 군대의 귀환을 기쁨과 자부심으로 환영했습니다. 선두에 선 것은 수도연대였으며, "투쟁 결의 - 승리 결의"라는 깃발을 높이 게양했습니다. 1954년 10월 10일 오후 3시, 옛 깃대 위에 노란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펄럭였고, 수도의 군대와 시민들은 깃대 마당에서 열린 승리 축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70년 전 수도 점령과 해방의 과정은 1954년 10월 10일이라는 역사적인 날을 전후해 발행된 신문에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1954년 10월 10일자 노동신문 273호의 첫 페이지. 사진: 노동신문.
그중에서도 수도 해방 당일에 발행된 매우 특별한 간행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심층적인 기사들이 연재되었습니다. 2년 전, 노동신문은 이 특별호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4년 10월 10일에 발행된 신문은 노동신문 제273호로, A3 용지에 활자로 인쇄한 4페이지 분량이며, 커프스 단추는 밝은 붉은색으로 인쇄되었고, 바람에 펄럭이는 국기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첫 페이지, "베트남 민주 공화국 10년" 정보란과 신문 테두리 바로 아래에 일련의 주요 뉴스 기사가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기사는 "해방된 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기사 서두에는 마치 기쁨에 찬 선언처럼 쓰인 문구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수도가 해방되었습니다. 수도가 해방되었습니다! 그 기쁨의 함성은 영원히 울려 퍼집니다. 기쁨과 설렘이 사람들의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환희에 찬 기쁨을 갈망하고 기다려 왔습니다."
"오늘, 우울과 슬픔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수도 하노이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귀환을 기쁘게 환영합니다. 오늘, 평화의 빛과 노란 별이 빛나는 선명한 붉은 깃발 아래, 사랑하는 수도 하노이에서, 우리를 항상 지지하고 격려하며 오늘의 승리를 위해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해 준 우방국과 세계 각국의 노동자 계급과 인민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라고 기사는 단언했습니다.
기사는 "...해방된 수도 하노이의 노동자와 인민이여, 우리는 새로운 장을 엽니다. 전 국민과 나란히 서서 수도를 영원히 평화롭고 밝고 점점 더 번영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신문은 베트남 노동총연맹이 수도 해방을 맞아 수도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진: 노동신문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빨리 재건하세요"
특히 기사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수도의 해방을 환영하며, 우리는 단결을 강화하고 그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우리가 방금 이룬 승리를 더욱 발전시키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신속하게 재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사 작성자는 또한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격렬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랑하는 남부 형제자매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남북이 하나의 가족으로서 신성한 단결을 이루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어려운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노력할 것을 결의합니다."
1954년 10월 10일자 노동자 신문인 노동신문 특집호 1면에는 베트남노동총연맹이 수도 해방을 맞아 수도 노동자들을 위해 호소하는 글이 실렸습니다. 기사는 "승리를 공고히 하고, 다가올 수도 노동자들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제목을 줄인 후, "종교, 성향, 정치적 견해, 다양한 단체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계급이 광범하게 단결하여 단결된 의지와 단결된 행동을 취하고, 전 인민과 함께 힘을 모아 평화를 공고히 하고, 전국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호소를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베트남노동총연맹은 수도 노동자들에게 "도시의 보호 정책을 엄격히 준수하고, 군사위원회가 국가 기관과 기업을 신속하고 완전하게 인수하고, 도시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도록 지원하며, 생산과 교통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시 건설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위 두 기사 외에도 1954년 10월 10일자 노동신문 특집호에는 수도 해방 당일 각계각층의 들뜬 분위기를 반영한 기사, 뉴스, 메모가 다수 게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하노이-자람 역에서 기적 소리가 승리를 환영한다"는 기사에는 1954년 9월 21일 하노이 역에서 첫 열차가 출발한 것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수도가 완전히 해방된 당일, 생산 회복의 분위기를 기록한 일련의 기사에는 "하노이-남-꽌 철도 건설에 기여하다", "좌안 노동자들이 해방 이후 생산 회복에 참여하다", "수도 하노이를 위한 빛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회고하다" 등이 있습니다.
2년 전, 수도 해방 68주년을 맞아 냔 단(Nhan Dan) 신문은 수도 해방 다음 날인 1954년 10월 11일과 12일에 발행된 특별호에 대한 자세한 기사를 다수 게재했습니다. 이 호에는 이 중요한 사건에 대한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이 호는 "1954년 10월 9일, 베트남 인민군이 수도 하노이를 완전히 점령했다"라는 제목으로 현장 기자들의 전보를 가장 중요한 입장으로 보도했습니다.
노란 별이 있는 붉은 깃발이 거리 곳곳에 펄럭인다
1954년 10월 11일-12일 발행된 난단신문 특집호. 사진: 난단신문
특히, 1954년 10월 9일의 주요 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하노이 기자 전보"는 "오전 9시 25분, 우리 군이 구 총독궁에 진입했고, 오전 10시 30분에는 북궁에 진입했다. 오후 4시에는 프랑스 연합군 전체가 하노이를 떠나 롱비엔 다리 동쪽으로 철수했다"는 등 당시 하노이의 환희에 찬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후 4시경, 프랑스군은 하노이의 마지막 땅을 떠나 롱비엔 다리 동쪽으로 철수했습니다. 우리 군대는 하노이를 정돈되고 질서 있게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우리 군대가 진격하는 곳마다 거리가 갑자기 변했습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조용하고 고요했습니다. 우리 군대의 호송대가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문을 열고 거리 양쪽으로 나가 깃발을 흔들고 모자를 던지며 기쁨의 박수를 쳤습니다. 노란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주변 국가의 국기와 뒤섞여 거리 곳곳에 휘날렸고, 그 색깔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었습니다. 거리에는 환영문과 커다란 구호가 걸려 있었습니다. "영웅적인 베트남 인민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민주공화국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호 주석 만세! 베트남 노동당 만세!" 거리의 노동자와 청년 자위대, 그리고 며칠 전 정부의 행정 경찰대가 현장에 나와 군과 협력하여 치안을 유지했습니다. 기사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려줍니다.
"보호 발전소에서는 노동자들이 군인들을 환영한 뒤 곧바로 돌아와 생산을 계속했습니다.
하노이 시에서 접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주력군(보병, 포병, 대공포 등)은 1954년 10월 10일 수도로의 역사적 진군을 준비하기 위해 교외로 계속 진격했습니다.
10월 9일 밤, 수도 하노이는 환한 환영의 문, 깃발, 현수막으로 환하게 빛났고, 전등 불빛이 눈부셨습니다. 하노이 군사위원회의 통금령이 곳곳에서 시행되었고, 모든 집은 다음 날 아침 군대와 하노이 군사위원회를 맞이할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뉴스"에 실린 "우리 군대, 1954년 10월 10일 수도 하노이로 역사적인 진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냔 단(Nhan Dan) 신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1954년 10월 10일 아침, 우리 군대는 보병, 포병, 대공포, 기계화부대 등을 포함하여 교외에서 수도 하노이로 역사적인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보병은 두 개의 큰 날개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군대는 오전 8시에 김마 관문을 출발하여 항데이, 항봉, 항가이 거리를 통과했습니다. 오전 9시에 항응앙, 항다오에 도착했고, 오전 9시 45분에 하노이 성채의 동문에 들어갔습니다.
2군은 오전 8시 45분에 베트남 학교를 출발하여, 주이탄과 동카인 거리를 따라 진격했다. 오전 9시 40분에 홈 시장에 도착했고, 오전 10시 10분에 호안끼엠 호수에 도착했으며, 오전 10시 40분에 다우싸오와 돈투이 지역에 집결했다.
포병 및 보병 부대는 오전 9시 30분에 바흐마이를 출발하여 오전 10시 15분에 호안끼엠 호수에 도착하고, 오전 10시 30분에 동쑤언 시장에 도착한 후 하노이 성채에 모여 오후 3시에 있을 국기 게양식을 준비했습니다.
사람들은 거리 양쪽에 커다란 환영문을 여러 개 세우고 새롭고 밝은 구호를 내걸며 군대를 환영했습니다. 항응앙과 항다오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1954년 10월 11일-12일 발행된 난단신문 특집호. 사진: 난단신문
"수년 만에 오늘은 행복의 날입니다"
또한 이번 호의 Nhan Dan 신문에서, 그 영웅적 분위기에 휩싸인 저널리스트 Thep Moi(1925-1991)는 여행기 "해방된 수도의 첫날: 바흐마이에서 롱비엔 다리까지"에서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10월 9일, 박마이, 낌리엔, 꺼우저이로 이어지는 길목에 갑자기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잊어라"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베트남 인민군 선봉대는 정연하게 대열을 지어 수도를 해방하기 위해 진격했습니다. 1번 국도에서 하노이를 바라보니 박마이의 전등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전등은 노동자들과 하노이의 모든 시민들이 여전히 투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병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6시, 녹색 깃발을 단 합동위원회 차량이 시내 중심부로 진입했습니다. 도로를 지키던 프랑스 연합군이 막 철수한 참이었습니다. 시민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군인들이여, 만세! 돌아왔다! 돌아왔다!" 우리 군의 첫 번째 차량이 교차로에 멈추자 환호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시민들은 마치 사랑하는 병사들을 꼭 껴안으려는 듯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한 동지 장교가 차에서 내려 몸을 움직여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 후, 정보를 쉽게 받으려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의식적인 질서 속에서 교외 지역 주민들은 깊은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한 노부인은 마치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이야말로 행복의 날인가 보다."라고 자문하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작은 손뼉을 쳤습니다. 한 노인은 손녀를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빈, 행복하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길 건너편에는 금색 글씨가 새겨진 선명한 붉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수도를 해방한 영웅 인민군을 환영한다."
우리 군대가 진군하는 곳마다 노란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나타났다. 지붕 위, 현관 위, 집집마다 이미 깃대가 설치된 높은 깃발이 내걸렸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수많은 문들이 갑자기 열렸다. 오랜 세월의 이별 끝에, 오랜 세월 싸우고 수백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용감한 인민군 장병들을 처음 본 순간, 인민들의 기쁨은 끝없는 환호로 넘쳐흘렀다. "호 주석 만세! 베트남 인민군 만세!" 수많은 날들, 수많은 세월의 흥분이 쌓여 모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들의 해방군을, 영원히 따르고 싶어 했다.
… “항가 비탈을 돌아보니 거리는 붉은 깃발과 현수막의 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하노이 시민들의 가슴속에 서 있었습니다. 하노이 시민들의 가슴은 혁명의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은 군인들에게 매달렸습니다. “호 아저씨는 언제 돌아오실까요, 형제들? 우리가 노래를 베껴 쓰겠습니다.” 하노이의 젊은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친구처럼 군인들에게 이야기를 열렬히 물었습니다. “어젯밤 우리 중 누구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신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바랐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군인들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용감하지만 너무 온화해 보입니다. 제가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가게 앞에서 여성들은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징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징을 들을 때마다 제 영혼이 사라져 버립니다…”.
수도 해방의 기쁨에 찬 분위기는 기자 테프 모이의 글을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변했습니다. "노란 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거북탑 꼭대기에 펄럭입니다. 가을 하늘은 설날처럼 아름답습니다. 호수는 맑고 푸른빛입니다. 항호아 교차로에서 붉은 바탕에 노란 배지를 단 경찰관들이 하얀 소매를 흔들며 차량의 진로를 안내했습니다. 오늘 정오, 첫 열차가 반디엔으로 기적을 불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지키기 위해 싸운 기관차 중 최신 기관차였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은 깃발을 들고 역과 호송대에 경례하며 그들의 열정과 결의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오후 4시, 구 인터존 I 전체가 영웅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항봉, 항다오, 그리고 하노이의 36개 거리는 깃발과 현수막으로 뒤덮였습니다. 프랑스 연합군은 다리를 건너 철수했습니다. 흰 투구를 쓴 군용 차량들이 다리의 네 번째 경간을 통과하자, 우리 보병들은 교두보를 봉쇄하기 위해 전진했습니다. 우리 경찰은 교두보에 주둔하여 교통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하노이는 온화하고 영광스럽게 국민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하노이 온 동네가 밝은 국기와 영웅적인 해방군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도취되었습니다.
오늘 밤, 하노이는 통금령을 침착하게 준수하며 불안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대다수의 군대를 수도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기는 아직 켜져 있습니다. 보호 발전소 노동자들을 맞이하는 문에는 전기로 반짝이는 오각별이 호안끼엠 호수에 비칩니다. 하노이는 밝았고, 앞으로 더 밝아질 것입니다.
1954년 10월 11일-12일 Nhan Dan 신문에 게재된 사설. 사진: Nhan Dan 신문
또한 이 특별호에서 냔단 신문은 "하노이 수용 및 관리 정책"이라는 사설을 게재하여 수도가 베트남 국민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 정부에 반환된 후 하노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관리할 것인지 논의했습니다.
기사는 매우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의 해방 도시에 대한 8대 정책'을 올바르게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 8대 정책은 짧고 간결하지만 매우 근본적입니다. 모든 간부와 국민은 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이행하기 위해 연구하고 조사해야 합니다.
인수 및 관리 정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도시의 질서와 안보를 유지하고 회복합니다.
-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고 회복합니다.
- 도시 운영의 모든 측면을 유지하고 복원합니다.
유지한다는 것은 이용 가능한 것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원한다는 것은 존재했지만 정체되거나, 파괴되거나, 손상된 것을 재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접수 및 관리 정책은 도시의 질서와 안보를 유지 및 회복하고, 도시 내 모든 사람과 모든 외국인(프랑스 시민 포함)이 생명과 재산을 보장받고, 방해나 위협 없이 평화롭게 생활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 시민들을 안심시키며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시 수용 및 관리 정책은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질서 교란 행위, 공공재산 훼손 행위, 강도, 절도, 그리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를 예방하고, 근절하며, 엄중히 처벌해야 합니다. 동시에 도시의 질서와 안전을 해치는 무의식적인 행위 또한 예방하고 근절해야 합니다.
접수 및 관리 정책은 국민의 모든 측면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식사, 생활, 위생, 여행, 업무, 오락 등입니다.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할 것은 국민에게 쌀, 장작, 식량, 물, 운송 수단, 야간 조명, 깨끗한 도로, 필요시 우체국, 퇴근 후 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입니다.
접수 및 관리 정책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도시 활동의 모든 부문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특히 정치와 경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실이 즉시 운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공공 및 민간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상점이 문을 열고, 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도시의 모든 산업 및 상업 활동이 정상적으로 지속되도록 해야 합니다. 공립 및 사립 학교, 병원, 조산원, 문화 및 교육 기관이 계속 운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사 말미에서 난 단 신문은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당과 정부의 도시 지역 접수 및 관리 정책의 핵심은 수도 시민들의 권익 증진과 수도 시민들의 긴급한 요구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긴급한 요구는 질서와 안보를 유지하고 회복하며, 시민들의 삶과 도시 활동의 모든 측면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정책을 올바르고 완전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담당 기관, 군, 민간, 정계, 당 간부들이 정책을 올바르게 준수하고 규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동시에 수도 시민들은 정책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규율을 준수하며, 정부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복종하며, 군정위원회의 명령을 엄격히 준수해야 합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활동 범위와 능력에 따라 하노이 수용 및 관리 업무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합니다.
70년 전 수도 해방은 언론의 핵심 사건이었습니다. 냔 단(Nhan Dan)과 라오동(Lao Dong) 신문 외에도 이 사건을 다룬 다른 많은 신문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5구역 내 리엔 비엣 전선(Lien Viet Front) 산하 기관인 꾸꾸옥(Cuu Quoc) 신문 220호(1954년 10월 18일자) 6면과 7면에는 "베트남 인민군은 매우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극도로 흥분된 민심 속에서 수도 하노이를 점령했다"라는 제목으로 우리 군이 수도를 점령한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또는 1954년 10월 하노이 구국 청년 연맹(Hanoi National Salvation Youth Union)이 발행한 수도 해방 기념일 기념 신문 "티엔퐁(Tien Phong)" 특집호처럼 말입니다.
10년 전, 수도 해방 60주년을 맞아 토 까오 기자는 냔 단(Nhan Dan) 신문에 실린 "수도 해방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습니다. "군정위원회 산하 틴 뚝(Tin Tuc)이라는 새로운 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중앙위원회는 응우옌 탄 레(Nguyen Thanh Le) 기자를 신문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편집진에는 쩐 비엣(Tran Viet), 추 하(Chu Ha), 응우옌 티에우(Nguyen Tieu), 응오 주(Ngo Du), 응오 티(Ngo Thi), 응오 티 즈엉(Ngo Thi Duong) 등 기자들이 소속 기관에서 배정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담당 간부부터 기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성공적인 정권 장악 과정을 보도하고, 혁명 정부의 지침과 정책, 국내 및 국제 문제에 대한 논평을 작성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뉴스팀은 저널리스트 응우옌 티에우(훗날 다이 도안 켓 신문의 편집장이 됨)와, 베트남의 소리 라디오와 외국 방송을 청취하고, 속기하고, 뉴스를 만드는 데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 응오 티가 이끌었습니다.
1954년 10월 10일 새벽, 신문 판매원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모두에게 새 신문을 사라고 권했습니다. "틴뚝 신문이 여기 있습니다.", "토이머이 신문이 여기 있습니다." 일간 신문은 일반 주간지만큼 넓었고, 4면으로 흑백 인쇄되었으며, 사진은 거의 없었습니다. "틴뚝 신문"이라는 이름은 굵은 글씨로 인쇄되었고, 각 글자 크기는 24mm x 25mm였으며, 세리프체로 된 진지한 글꼴이었습니다. "틴뚝 신문"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대문자로 "하노이시 군사위원회 기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1954년 11월 10일, 하노이 군사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군사위원회 산하 신문사인 '뉴스'의 사명이 완수되었습니다.
응우옌 하(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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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congluan.vn/khong-khi-hao-hung-ngay-giai-phong-thu-do-nam-1954-qua-nhung-trang-bao-troi-thu-ma-dep-nhu-ngay-tet-post315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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