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전례 없이 공격하자 텔아비브는 대대적인 보복을 가했고, 중동은 새로운 폭력과 불안정의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이는 이 "핫스팟"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여전히 세계 에서 가장 복잡하고 지속적이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1993년 미국 백악관에서 오슬로 협정에 서명하는 당사자들. (출처: History.com) |
역사의 흐름에 맞서
기원전 11세기부터 고대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되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유대 국가들이 멸망한 후, 팔레스타인은 아시리아 제국, 바빌로니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의 지배를 여러 세기 거쳐 아랍 무슬림들이 이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유럽에 반유대주의가 확산되면서 1880년대 초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후, 팔레스타인은 1918년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1920년대 초 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아민 알 후세이니가 반유대주의 폭동을 일으켜 유대인들이 가자 지구를 떠나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연합국에 일시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알 후세이니와 같은 일부 급진적인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나치에 협력하여 아랍 세계에서 반유대주의 운동을 지속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 유럽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양측 간의 갈등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1947년까지 유대인은 인구의 33%를 차지했지만, 팔레스타인 영토의 6%만 차지했습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UN)는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분할하고, 성지 예루살렘은 국제 행정 구역으로 지정하는 결의안 181호를 통과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획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56%(비옥한 해안 지역 대부분 포함)를 유대 국가에 주는 반면,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94%와 인구의 67%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공식 선언했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 모두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는 1948년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1949년에는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결의안 181호에 따라 아랍인들에게 할당된 팔레스타인 영토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합병되었고, 요르단은 서안 지구를, 이집트는 가자 지구를 점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도 합병했고, 동예루살렘은 일시적으로 요르단의 지배하에 놓였습니다. 모든 영토를 잃은 후, 팔레스타인에서 주변 국가로 아랍인들이 대거 이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64년 야세르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창설했고, 이듬해 파타당 이 창당되었습니다. 1967년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이스라엘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등 세 아랍 국가에 대한 선제 공격을 개시했고, 이는 6일 전쟁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승리하여 요르단강 서안 지구(동예루살렘 포함), 가자 지구, 골란 고원,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습니다.
6일 전쟁 이후 PLO는 요르단으로 도피하여 후세인 국왕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1970년, PLO는 예상치 못하게 요르단 국왕에 등을 돌린 "검은 9월" 사건 이후 남부 레바논으로 이동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는 유대교의 성스러운 명절인 욤 키푸르 기간에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승리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에 따라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평화에 대한 희망은 PLO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연이은 공격으로 무산되었습니다.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몇 주 만에 격퇴되었습니다. PLO 본부는 1982년 6월 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의 명령으로 튀니지로 철수했습니다.
대규모 성전
1987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동시 성전)가 발발하여 하마스가 창설되었습니다. 하마스는 외교적·정치적 성향이 강한 PLO나 파타와는 달리 무장 투쟁을 표방했습니다. 1988년 아랍 연맹은 PLO를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표로 인정했고,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세력 간의 갈등이 야기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강화되었습니다. 1993년 9월 13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시르 아라파트 PLO 의장이 오슬로 1차 협정에 서명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이 협정을 통해 PLO는 튀니지에서 철수하여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 과정은 하마스와 파타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1995년 9월, 워싱턴에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자치권 확대를 위한 새로운 잠정 협정(오슬로 2차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유대인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했습니다. 2004년에는 아라파트 수반이 사망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듯 보였던 중동 평화 프로세스는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수년간의 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2000년 9월 제2차 인티파다가 발발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리쿠드당의 야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그 주변에 수천 명의 보안군을 배치하고 알아크사 모스크를 "도발적으로" 방문하면서 촉발되었습니다. 이 폭력은 팔레스타인 국가안보군(PNS)과 이스라엘 방위군(IDF) 간의 공개적인 분쟁으로 확대되었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을 계속 탈환하고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영토를 분리하는 장벽을 건설하며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6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육로, 공중, 해상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2009년 2월, 국제 사회가 참여하는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양측 간의 산발적인 교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지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가장 성스러운 도시이자, 유대교 성전이 있던 곳이자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예수가 처형당한 곳이자 성묘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무슬림에게 예루살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낙원으로의 야간 순례"를 했던 곳이자 알아크사 모스크가 세워진 곳입니다. |
역사는 반복된다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 결의안 67/19가 채택되어 팔레스타인은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이러한 지위 변화는 사실상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계속해서 격화되었습니다. 2014년 여름,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약 3,000발의 로켓을 발사했고, 텔아비브는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공세로 보복했습니다. 이 전투는 2014년 8월 말 이집트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면서 종식되었습니다.
201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폭력 사태가 잇따르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 오슬로 협정에 따른 영토 분할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2018년 5월,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교전이 다시 발생했습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100발을 발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24시간 동안 가자지구 내 50곳 이상의 목표물을 공격하며 대응했습니다.
2018년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오랜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은 이스라엘과 일부 동맹국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중동을 더욱 분열시켰습니다. 2020년 8월과 9월,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텔아비브와의 관계 정상화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각각 1979년과 1994년에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무슬림 국가와 이스라엘 간의 정상화 추세는 미국과 여러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세력과 일부 국가들은 이러한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영토에 수천 발의 로켓을 발사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력한 보복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새로운 갈등이 발발하여 확산되었습니다. 중동의 "불구덩이"에서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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