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베트남 통신사에 채용되어 꽝닌성과 하이즈 엉성에서 주재 기자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하이즈엉성은 제가 주재국장으로 14년간 근무하는 동안 가장 애착을 느꼈던 지역입니다.
2021년 1월 27일 저녁, 몇몇 기자들이 탄하(Thanh Ha) 지역 당위원회와 인민위원회 지도자들과 만찬을 하던 중, 치린(Chi Linh)시에 있는 포윤(Poyun) 전자회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동료들과 저는 즉시 관계 당국에 연락하여 정보를 확인하고, 성(省) 지도자들과 정보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확진자는 2,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회사 소속 근로자였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었고, 근로자들은 다른 여러 성(省)과 도시로 돌아가야 했기에 추적 작업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예방 및 통제를 위한 지방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저에게 Zalo 지도자 그룹에 합류하여 전염병 상황과 전염병 예방 활동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이후로 동료들과 저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정보전에 뛰어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하이즈엉(Hai Duong)이 성 전체에 봉쇄령을 내렸을 때였습니다. 당시 기관 전체에 직원이 두 명밖에 없었기에 개인의 건강과 지속적인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고, 하루에 겨우 네 시간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책상에서 잠든 적도 많았고, 일어나서 기사를 쓰고 편집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하이즈엉 베트남 통신(VNA)에서 첫 달 동안 기자 두 명이 거의 500편에 가까운 기사를 썼습니다. 한 동료는 농담 삼아 우리를 "전염병의 한가운데 있는 전쟁 기자"라고 불렀습니다.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일하며 끊임없이 바이러스 검사 샘플을 채취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저에게 잊을 수 없는 모습은 부모와 가족을 격리 구역에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6~7살 아이들, 공부 중이고 친척이 병원에 있거나 막 세상을 떠난 하이즈엉 의과 대학 학생들이 바이러스 검사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성(省)과 다른 지역의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했던 모습, 햇볕과 바람에 얼굴이 검게 변한 농부들의 모습, 수확기가 지났지만 팔 수 없는 농산물 밭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정보 제공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후원자들과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하이즈엉의 전염병 예방 의료진과 관계자들을 위한 물품, 의료 장비, 쌀, 식량을 지원했습니다. 친구들과 동료들이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기관에 선물로 가져다준 계란, 채소 다발, 마스크, 소독 스프레이는 제 언론인 생활 내내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론 활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헌신을 받아들이고 위험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혁명적인 언론인이 될 만한 용기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DINH MANH TU, 베트남 통신사 하이즈엉 상주사무소장출처: https://baohaiduong.vn/chon-nghe-bao-la-chap-nhan-dan-than-khong-so-hiem-nguy-4139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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